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신중하게 혹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길을 선택해 살아간다. 최선의 선택을 한 사람은 후회 없이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이야기를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도입해 풀어나갔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A를 선택했다면, 다른 우주에서는 B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그 밖에도 C, D, E 등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 나오는 악역이 정말 인상적이다.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미련이 많은 그녀는, 결국 그 인생을 취하기 위해 점차 악해지게 되고 결국엔 손대서는 안 되는 금기를 건드리기까지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삶을 손에 쥐기 위해 끝까지 가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이 처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의 삶에서 그만큼 공허함과 우울감으로 사로잡혀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관객으로서 문득 들기도 했다.
그런 느낌을 받게 된 것은, 아마 그 마음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택의 갈림길에 있을 때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이 더 강했다. 사실 언젠가부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살아본 적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인생을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았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게 되었다. 그러고는 소확행을 느끼며 하루하루 작은 것에도 기쁘게 살아갔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자세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엔 조금이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지금의 내 삶을 통해 깨닫고 있는 중이다. 결혼을 해서 아기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그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당연히 현재 아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엄마라는 이유로 내게 사랑을 듬뿍 주는 딸을 보며 나도 무한정의 사랑을 퍼부어주면서 그 기쁨을 매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나만의 시간’이 정말 ‘하나도’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준 적이 없었다. 그 시간이 너무도 필요한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아가며 하루하루 충격을 받는 것 같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상태에 대해 좌절과 절망을 점점 더 크게 느꼈다.
이는 나를 멀티버스로 떠나게 했고, 과거로 돌아가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들을 택했을 다양한 나 자신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물 흐르듯 살고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는 게 너무도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만약 예전에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기 위한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면 어땠을까, 혹은 한국에 잠시 들어왔어도 몇 달 후에 바로 다시 나갔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등등 이러한 망상은 아기가 낮잠 자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필수적이었다. 딸이 깨어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딸이 자고 있으면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삶… 이는 하루에 눈을 떠서 다시 감을 때까지 무한 반복이었으며, 이 패턴은 매일, 매주, 매달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여성분은 육아를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나’라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크게 느낄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남편과 아이가 자고 있을 때 깨어있을 체력이 남아있었더라면 조금은 괜찮지 않았을까? ‘나’라는 인간은 ‘자유’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러한 현실에 처하니 더욱 깨닫게 된다.
이를 아는 남편이 내게 나름의 자유를 주기 위해 아가가 낮잠 잘 때 찔끔찔끔 영화를 함께 보자고 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혼자 보낼 시간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또 다른 도피인 글쓰기를 이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노트북 앞에 있는 현재의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아, 살 것 같다!”
요즘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다른 나라에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아직 돌도 되지 않았지만, 지난 휴가 때 호텔을 좋아하는 아가의 모습을 보며, 우리 딸도 여행을 즐기지 않을까 나름 추측해 본다. 또한 내가 관찰한 남편은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를 지켜줄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완전체의 모습으로 우리 가족이 미래에 어디서 무엇을 할지 상상하면 벌써부터 흐뭇하고, 이는 현재의 삶에 동기부여가 된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들을 멀티버스 개념으로 떠올려보면서 오늘 하루의 원동력으로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해 본다.
*모든 영화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포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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