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저마다 그리운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늘 가슴 한편에 그리움이 존재했다. 연인의 유무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형체도 정체도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가 선악과 사건으로 그 연결이 끊어져서 그리움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어쨌든 그러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것으로든 표현하고 싶어하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서 예술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왜 뜬금없이 그리움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했냐면,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 강하게 드는 감정이 바로 “그리움”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자는 어릴 때부터 한 남자에 사로잡혀 그 한 사람만 사랑하게 된다. 시간여행자였던 상대 남자가 계속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기서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 있기 힘든 “오직 단 하나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특히 이성 간의 애절한 로맨틱한 사랑은 인생에서 딱 한 번만 있으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는 환상이 있었다. 사실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대신 만족할 수 있어서 나름 기뻤다.
이 영화에서는 어릴 때부터 오직 그 사람만 기다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와 결혼을 하고, 나중엔 결국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지만, 원래라면 볼 수 없는 사람임에도 죽기 전에 그가 했던 시간 여행 덕분에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또 기다리는… 인생을 사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이 주인공 여성의 삶의 시작은 기대감이었겠지만 살아갈수록 그리움으로 가득 차지 않았을까. 그런데 비단 이 작품에서만 그러할까, 우리 인생 모두가 사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어릴 때 재밌게 놀았던 친구들이 그립고, 진지한 이야기를 같이 했던 언니들이 그립다. 이후에 사회에서 만나는 관계들이 전부 피상적인 것 같다고 느껴질수록 더욱 그러했다. 특히 결혼하고 터를 잡은 곳에서 아는 사람 전혀 없이 육아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뭔가 더 ‘혼자서 힘겨워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는 시간 여행을 컨트롤할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사라지고는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갑자기 사라져서 한참 후에 돌아오면 너무 속상할 수밖에 없다. 나의 남편은 시간 여행을 하진 않지만 주인공 여자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느껴졌다. 남편 직업 특성상 출장을 1~2주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데,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밤에 남편이 없으면 괜히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감정이 심하게 들 때는 아가랑 나랑 둘만 함께 사는 거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도 한다.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인 것 같지만 그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남편의 부재를 조금 아름답게(?)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시간 여행하러 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떠한 원망 대신 그 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우면 그래도 혼자 육아로 힘들어하는 시간을 조금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남편은 나의 마지막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아주 벅찬 사랑. 앞으로도 딸이 성장해서 독립된 인격체가 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야겠지만, 진짜 독립할 때가 되면 그 무엇보다 가장 큰 그리움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이 지금부터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 또한 그 그리움으로 인해 지금과는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단 하나의 마지막 사랑, 그리고 단 하나의 벅찬 사랑.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삶을 오늘은 꼭 살아내야지.
*모든 영화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포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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