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리고 기록/도서 리뷰

인간의 능력을 끌어내는 롤모델 - 소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바람결에.. 2023. 4. 5. 23:13

외국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실재하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작가가 묘사한 대로 프랑스 어딘가에 있을 어떤 섬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잠시라도 쉼과 휴식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짧은 명상일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재미는 낯선 외국어와의 만남이다. 속으로 발음을 따라하며 이렇게 몽글몽글한 언어로 무슨 대화를 할지 상상해 본다.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에요 :)

 

소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의 제목만을 들었을 때, 장르가 스릴러임을 알기에, 혹시 등장인물의 작가들이 글의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어마무시한 내용은 아닐지 걱정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진짜?’ 이런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예상을 깨고, 또 깨는 내용이 계속 나온다. 집필하기 전에 기욤 뮈소 작가님이 얼마나 탄탄하게 짜임새를 구성했을지 느껴질 정도다. 

 

책에서는 작가 지망생이 나오는데, 그가 어떤 절필한 유명 작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가 머물고 있는 섬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찾아간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집요하게 그 유명 작가와의 만남을 성사시키지만,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작가에게 어떤 사건이 생기게 되고, 자신을 롤모델로 삼는 지망생을 불러 그 사건의 뒷조사를 시킨다. 사명감에 불탄 지망생은 단서를 찾고 또 찾으며, 간이 부은 것 같은 대담함으로 위험한 조사를 자행하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소설에서 ‘나’로 나오는 사람인데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다 읽어보면 이 지망생은 스토리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이라, 주요 사건에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 사람의 죽음이 허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열망하는 사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까지 했는데, 그 에너지가 낭비된 느낌이랄까.

 

소설 파친코에서 노아라는 인물이 생각났다. 노아는 자신의 아버지 백이삭을 정말 좋아해서 그와 같이 되려는 노력을 많이 했고 실제로 아버지의 성향을 빼닮은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그의 친아버지는 야쿠자였고, 이를 알게 된 노아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괴로워한다. 아버지라고 여긴 사람을 롤모델로 삼았기에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진짜 친아들인 듯 비슷하게 닮아있었다. 

 

이렇게 롤모델의 존재는 인간의 능력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위에서처럼 대담함을 가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부분을 닮기도 한다.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모습이 있다면, 이미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