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브 피트에서는 씩씩한 소녀가 등장한다. 매일 해야 할 일 리스트를 하나하나 삭제해가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녀는 유튜브로 일상을 나눌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러나 사실 여주인공이 머무는 곳은 병원이고, 치료받는 환자실을 자신의 방으로 꾸며놓을 정도로 그녀는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그 소녀는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특히 서로의 박테리아에 감염될 수 있는 매우 취약한 상태이기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6 피트(ft; 1ft = 30.48cm) 이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다, 영화 파이브 피트는 이 질환을 앓고 있는 남녀 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어느 장면에서든 눈물을 터뜨릴 수 있는 감성이 폭발하는 작품이며, 관객들 중에는 인생 영화라고 말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러나 스토리와는 별개로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스텔라’, 그녀의 연인은 ‘윌’, 그리고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 ‘포’는 모두 같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10대 아이들이다. 시한부 인생인 것도 서러운데 특별하고 절친한 관계인 그들은 서로 다가갈 수도 없다. 앞으로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공통점이 많지만, 삶을 대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스텔라는 도입부에서도 언급했지만 매일 해야 할 리스트가 있다. 그리고 그 목록을 꼭 이뤄가며 살아야 한다. 약 병은 아침, 점심, 저녁때 먹어야 하는 것으로 분류해서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고 난잡한 것을 싫어한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통제해야 하는 강박이 있는 상태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고 싶은 여주인공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일까?
윌은 폐이식에 실패해서 그런지 비관 상태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중인데 희망을 갖기보다는, ‘어차피 해봤자’라는 심정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의사 선생님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언급까지 한다. 오래 살지 못하는 데다가 타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누구나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누구보다 시간이 값진 이들에게, 자유마저 없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든 일일 수 있다.
포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지만, 자신이 먼저 떠나고 상대가 남겨질 것을 걱정해 이별을 택한다.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지만,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그는 결국 사랑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질 수도 있기에, 상대의 인생을 생각한 배려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포’도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다. 시한부라는 인식은 그의 행복을 더 빨리 앗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스텔라, 윌, 포’를 통해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마음의 상태를 대신 비춰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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